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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의료원장에 최형호 광주 수완행복한요양병원 진료원장 임명
목포시의료원장에 최형호 광주 수완행복한요양병원 진료원장 임명
목포시는 신임 목포시의료원장으로 최형호 광주 수완행복한요양병원 진료원장을 임명했다고 27일 밝혔다. 목포시의료원장은 공모 절차와 임원추천위원회의 공정한 심사를 거쳐 최종 추천되었으며 임용권자인 목포시장이 임명함으로써 3월 1일부터 3년간 임기를 시작한다. 최 원장은 1953년생으로 조선대학교 의학과를 졸업 후 원광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조선대 의학과, 가정의학과, 흉부외과 교수로 재직한 후 의과대학장, 종합건강증진센터장을 역임했다. 또한, 강도 높은 수련으로 난치성 심장질환자들을 위한 개흉술과 심장 수술을 성공시켰고, 각종 의료 논문 저술은 물론, 후진양성과 원활한 의료행정을 펼쳐왔다. 교수 정년 후 현재까지 수완행복한요양병원 진료원장으로 재직 중이며, 39년간 최일선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돌본 전문 의료인이다. 시는 신임 최형호 원장이 의료인으로서의 전문성과 원활한 행정 능력 등을 두루 겸비해 목포시 공공의료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목포시의료원은 1897년 개항과 동시에 공립병원으로 개원한 이래 120여 년의 유구한 세월 동안 전남 서남권 유일의 공공병원으로서 지역사회 건강 불평등 해소에 공헌하고 있다.
제380회 목포시의회 임시회 폐회
제380회 목포시의회 임시회 폐회
목포시의회(의장 문차복)가 지난 9일, 제380회 임시회를 마무리했다. 2023년 첫 회의인 이번 임시회에서는 박홍률 시장의 2023년 시정보고와 각 상임위별로 주요 업무보고를 받았고, 시민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을 위한 각종 조례안을 처리했다. 주요 부의 안건은 ▲정재훈 의원의 ‘목포시의회 지방공무원 인사규칙 일부개정규칙안’ ▲백동규 의원의 ‘목포시 법률고문변호사에 관한 조례 전부개정조례안’ ▲유창훈 의원의 ‘목포시 청년발전 기본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목포시 청년가업승계 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목포시 청년·일자리 통합센터 설치·운영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목포시 중장년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고경욱 의원의 ‘목포시 전시 작품 구입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김관호 의원의 ‘목포시 체육진흥조례 일부개정조례안’ ▲박용식 의원의 ‘목포시 주차공유 활성화 지원 조례안’ 등 총17건이 가결됐다. 문차복 의장은 폐회사에서 “한파와 난방비 인상으로 서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시민의 입장에서 무엇이 시민을 위한 것인지 고민하며 세심하게 시정을 추진해달라”며 집행부에 당부하는 한편, “모두가 꿈꾸는 행복한 목포를 위해 쉬지 않고 달리겠다”라고 올해 의정활동의 포부를 밝혔다.
목포 찾은 이난영의 딸 ‘김 시스터즈 리더’ 김숙자씨
목포 찾은 이난영의 딸 ‘김 시스터즈 리더’ 김숙자씨
김숙자 선생이 목포를 떠났다. 지난 달 27일 어머니 이난영의 고향인 목포에서 6일동안 머무른 뒤다. 1935년 스무살에 ‘목포의 눈물’을 불렀던 가수 이난영의 둘째 딸이며 1959년 미국으로 진출해 TV쇼에 출연하는 등 인기를 얻었던 한국 최초 여성 보컬그룹인 ‘김시스터즈’ 리더다. 지금의 BTS, 블랙핑크, 싸이 등과 같이 한국을 전세계에 알렸던 한류스타 ‘1호’인 셈이다. 목포에서 열린 ‘목포뮤직플레이’ 개막 행사에 참가해 어머니의 고향에서 어머니의 노래인 ‘목포의 눈물’과 ‘다방의 푸른 꿈’을 불러 감동을 선사했다. ‘이난영&김시스터즈전시관’이 주관한 ‘김시스터즈 김숙자 토크’쇼에서 어머니에 대한 옛 추억과 미국에서 가수로 성공하게 된 사례 등을 유쾌하며 애절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했다. 토크쇼는 2016년 ‘행(幸)과 불행(不幸)으로 보는 가수 이난영의 삶과 노래’로 논문을 발표한 근대 대중음악 분야 멘토(mentor)인 장유정(단국대·가수)교수가 진행했는데 마치 오누이가 함께 나누는 대화처럼 편안했다. “목포의 눈물이 여러 지역, 스포츠 경기장에서도 함께 불려지는 것을 보며 감동을 받았고 감사하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김해송·작곡 및 작사가)는 항상 무대에 서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다. 아버지는 자매형제가 하모니를 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고 했다. “어머니(이난영은 우리나라 최초 걸그룹인 ‘저고리 시스터즈’의 리더)는 족두리를 하며 치마저고리를 입고 무대에 섰다”고 기억했다. “집에 불이 났을 때도 3자매가 해외(미국)에 진출하려면 악기를 배워야 한다며 많은 기회를 주셨다”며 “3개의 악기로 시작해 30개가 넘는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그룹이 됐다”고 말했다. 미국 진출을 앞두고 “23살까지 연애를 하지 말라”고 “유명해 질 때까지 절대로 한국에 들어오지 말라”는 말씀도 했다. “처음 미국 라스베이거스는 흙먼지가 바람에 날리는 넓은 들판 같았다며 그곳의 아시안쇼에 처음으로 공연할 수 있는 기회가 와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다 “미국의 인기 TV쇼인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는데 유명 프로그램인 줄 모르고 출연해서 오히려 떨지 않고 공연했다”고 웃었다. 그는 “로마, 파리, 런던 등 전 유럽 순회공연을 하면서 우리 3자매는 항상 ‘한국에서 태어난 가수’라는 사실을 알렸고 한국인이란 자부심을 가졌는데 그것은 어머니의 뜻이기도 했다”고 했다. 한 시간 남짓 진행되던 토크 쇼는 어릴 적 어머니 품에 안긴 채 얘기를 듣다가 잠이들었던 것처럼 스르르 빠져 들었다. 선생님은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어두운 밤, 캄캄한 밤 같았다”며 북교동 주민의 통기타로 ‘실로암’을 연주하며 부른 노래는 가장 긴 여운으로 남는 순간이 됐다. 관객들의 ‘앵콜’ 요청에 ‘김치깍두기’ 한소절을 불러 주며 토크쇼를 마쳤다. 지난 9월 30일~ 10월2일 갓바위문화타운 일원에서 열린 목포뮤직플레이가 마무리 됐다.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시민들과 함께 한 저녁 식사 자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였다. 곧은 외모에서 풍기는 당당함에도 시민들과 마주치는 눈빛에서는 어머니의 자상함이 묻어났다. 그 자리에서 가슴에 묻어둔 아픈 얘기도 꺼냈다. 그는 “1965년 4월 한국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3자매는 부고장을 들고 밤새 울었다”고 했다. 그때 매니저가 “과연 어머니였다면 우리 3자매가 어떤 선택을 하길 바랬는지 생각해 보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공연 취소에 따른 위약금을 지불했어야 했고 갖고 있던 여권으로는 한국에 나가면 다시 미국으로 되돌아 갈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많이 울었다”고 고백했다. 김숙자 선생이 어머니의 고향 ‘목포’에 와서 전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항상 아버지 김해송과 함께 무대를 기획하고 공연했고 임신 중에도 족두리에 치마저고리를 입고 늘 무대에 섰다는 이야기에서 근대시대 열심히 활동했던 가수이자 공연기획가인 이난영 이야기. 자녀들을 세계적인 시스터즈와 보이즈그룹으로 만들려고 노력했고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악기를 배워야 한다며 자매형제들에게 악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줬고 유명해 질 때까지 절대로 한국에 들어오지 말고 한국인이란 자부심을 잊지 말라고 했다. 1965년 돌아가시면서도 자녀들이 미국에서 계속 활동하길 바랬을 것이라는 이야기에서 자녀들에게 강하면서 끝없는 사랑을 줬고 조국을 사랑했던 어머니 이난영 이야기를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김숙자 선생님은 목포뮤직플레이 무대에서 “어머니 이후 후배가수들이 이런 무대에 계속 설 수 있길 바란다”며 83세 마지막 은퇴 공연을 끝내고 무대를 내려왔다. 우리는 김숙자 선생의 90살, 100살에도 기념 공연하기 위해 다시 무대에 서길 바란다. 김숙자 선생이 떠난 후 목포 북교동 ‘이난영&김시스터즈 전시관’ 벽에는 선생님이 쓴 아들 ‘앤서니 보니파지오’와 손자, 손녀 ‘맥케이, 마이클, 카이, 브랜든, 보니파지오’의 이름이 남아서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